꿈에서조차 그린 적 없던 황금 극장에 기어코 오르고야 말았다. 거짓말이지……. 드레디어가든, 물거품아리아홀을 떠올린다. 무대가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면서 일단 올랐던 첫 스테이지, 드레디어가든. 연기랄 것도 없이 천연덕스럽고 당당한 ‘빈카’의 모습을 보였던 무대. 많은 이들의 무대를 보고, 수없이 연습하고, 공부하며 포기했던 분야에 다시금 도전했던 두 번째 스테이지, 물거품아리아홀. 냉정하게 말해서 봐주기 어려운 춤이었지만, 포기했던 것에 다시 도전한다는 사실에 의의를 둘 수 있는 무대였을까. 다시 말해, 그나마의 연기를 곁들이며 춤에도 신경을 기울이기 시작한 풋내기 코디네이터의 모습을 보였던 무대였으리라.
엘리트 트레이너라고는 하지만, 결국 무대 위에서는 신참 중에서도 신참이나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이제야 겨우 ‘무대’란 무엇인지 배워나가기 시작한…… 그런 시점이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굴자면. 지금까지 실패 없이 달려온 것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성과였다. 그런 의미에서는 황금극장의 건은 포기해도 나쁘지 않았겠으나.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이미 한참 전에 본인의 손으로 던져버리지 않았던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첫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두 번째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포기했던 춤에 도전했듯이…… 그리고 여기, 플로레에 도착했듯이.
그리고 결국 오르게 된 마지막, 황금극장이다.
어릴 적에는 연기자들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연극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물 속 배우였지만, 같은 배우임에도 작품에 따라 역할이 휙휙 바뀌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배역을 소화해 내면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세계적인 배우들을 부러워했다. 한때 그 꿈을 키워본 적도 있었으나, 이 역시 그다지 재능이 없다 판단했었는지 금방 포기해 버렸던 기억이 난다. 바보, 왜 그랬던 건지. 어린 시절엔 노력의 즐거움을 몰랐다.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오는 기쁨을 몰랐다. 처음엔 누구나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몰랐다. 10점에서 시작해서 20점, 30점, 더 나아가 80점, 83점…… 끝내는 100점. 진짜 천재는 겨우 100점에 만족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100점을 달성하여 자신의 ‘완벽’이 되었을 때의 쾌감을 천재들은 아마도 모르리라.
아이돌, 배우, 모델……. 각기 다른 분야였으나 어릴 적 한 번씩 빈카를 거쳐 간 꿈의 이름이다. 어찌 보자면 다 컸다고 생각한 인제 와서야 하나씩 도장이라도 깨듯 도전하게 되었다는 게 조금 얄궂은 운명일까. 빛나는 것을 사랑하던 아이는, 빛을 동경하던 아이는 스스로 빛나기 위해 황금극장의 스테이지 위로 오르고야 말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수한 흰 원피스를 입고 무대 위에 오른다. 머리는 단정하게 묶은 형태로, 그 긴 머리카락이 다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깔끔한 브레이디드 번으로 묶어두었다. 금방이라도 가발망을 쓰고 가발을 쓸 수 있도록. 염색이네 뭐네 다양한 걸 생각해 봤지만, 다양한 연출을 고려하면 차라리 가발 쪽이 편하리라 판단한 탓이다.
해내야 할 것이 많다. 신경 쓸 부분이 잔뜩이다. 그러면서도 티를 내서는 안 된다. 무너져도, 망해도, 실패해도. 티 내지 않고 막이 모두 내려갈 때까지는 주어진 배역만을 연기해야 한다. 이 무대에 ‘빈카’는 없다. 그러니, 인사하는 이 순간만이 오직 ‘빈카’일 수 있다. ‘나’, 혹은 ‘빈카 페리’, 그것도 아니면 ‘페어리 윙크’를 알리고 싶었으면서 자신의 특색을 모두 죽일 가발에, 그런 연기를 할 생각을 하니 어째 오묘한 만족감이 차오를 정도였다.
페어리 윙크의 이름을 내걸기 시작한 후의 많은 모습은 이미 연기였다.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미소, 친절한 목소리, 애교 가득한 수다라거나 하는 건 어릴 적의 빈카 페리와는 꽤 다른 모습이었으니까. 물론, 이 연기는 무대 위에서의 연기와는 다르게 제 안에 내제된 것을 끌어오는 수준에 그치긴 했지만, 어쨌든 본래의 성격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기야 했다. 그도 그럴 게, ‘페어리 윙크’라는 이름 역시 그의 SNS라는 작품 속의 배역이니까.
그러니 만족감이다. 오래토록 해왔던 연기 대신, 완전히 다른 연기를 선보이는 셈이다. 아무도 모르는 빈카 페리의 모습을 보이는 셈이다. 누군가는 실망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충격받을지도 모르는 연기가 될 터. 그저 예쁘기만 해서는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없으니까. 많은 이들을 매료시킬 단 하나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쌓아 올린다. 다른 모습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는 지났다. 드레디어가든에서 고민했으며, 물거품아리아홀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니 이건 빈카 페리가 사랑받기 위한 이야기이다.
대본 속 ‘사랑’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하게 되었지만!
*
수수한 흰 원피스에 맨발, 아무 장신구도 없이 무대의 한가운데에 서서는 모두에게 공손히 인사한다. 꼭 잠들기 전의 아이 같기도 하고, 나갈 채비 중인 아가씨 같기도 하고. 어느 쪽이든 순수한 요정의 모습이다.
“스테이지 온, 오늘도 황금 극장을 찾아주신 모든 여러분, 환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자리에 앉아 감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동화라는 이름 뒤에 숨은 깜찍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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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여왕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아이, 공주를 너무나도 아끼는 탓에 자신의 성 밖으로 결코 공주를 내보내는 일 없는 여왕의 이야기. 여왕에게 공주는 지고의 보석이요, 자신의 성은 그 보석을 지키기 위한 보석함이다. 무언가를 극도로 아끼는 마음은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도 아끼는 탓에 다른 이에게는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마음은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광적인 사랑도 어쨌든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 일종의 소유욕, 일종의 집착, 일종의 병. 하나 여왕은 그 마음을 ‘사랑’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이 역시 사랑이다. 사랑, 사랑, 사랑. 느끼는 자가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겠다면, 그것을 대체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그렇다면. 그런 보석을 도둑맞은 여왕의 기분은 어떠할까. 제 사랑이 타인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면,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여왕은, 타인에게 결국 그 아름다움을 보이게 되었음에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 광적인 사랑은 어떤 감정으로 변모했을까.
어쩌면, 이미 그 여왕이 뒤틀린 사람이라면.
그건 일종의 충족감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사랑한 것은 그다지도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고른 것은 이다지도 완벽한 것이다.
내 사랑은 누구에게든 인정받으리라.
사랑했기 때문에 보석함 속에 꼭꼭 숨겨두었지만, 보석은 본래 밖으로 내걸어야 그것이 보석임을 모두가 알아주는 법.
자아, 노래하자. 이 만족스러운 마음과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는 애절한 마음을 하나로 담아 선율을 만들어내자.
*
아지랑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이 화원에
불현듯이 찾아든 단 하나의 불청객
초대장 하나 없는 무례함 꾸짖지 않을 테니
초대한 적 없으니 부디 돌아가시오
나의 공주는 두고 부디 돌아가시오
보았다면 만족하고 부디 돌아가시오
나의 성도 줄 테니 공주만은 두고 가시오
이 경고 듣고도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나의 요정이여! 저 마녀에게 이 괴로움을!
─
이는 마녀의 이야기이다. 얼굴도 모르던 이에게 사랑에 빠진 탓에 남의 보석함에서 그 보석을 훔쳐낸 마녀의 이야기. 마녀에게 공주는 가련한 동화 속 주인공이요, 여왕은 공주를 핍박하며 집착하는 악인이며, 자신은 공주를 구출해 낼 영웅이다. 타인을 제 망상 속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가공하여 만들어진 인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정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실제로 마주한 이가 어떠한지, 그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조차 없이 자신의 주인공이라 숭상하고야 마는 마음은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망상에 빠진 사랑도 어쨌든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 일종의 망상, 일종의 자기만족, 일종의 병. 하나 마녀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이 역시 사랑이다. 사랑, 사랑, 사랑. 느끼는 자가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겠다면, 그것을 대체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그렇다면. 그런 주인공에게 거절당한 마녀의 기분은 어떠할까. 제 사랑은 시작도 못 했거늘, 이미 자신을 밀어내는 공주를 눈앞에 둔다면,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 가련한 공주의 이야기에 푹 빠졌던 마녀는, 여왕의 품에 있던 공주의 삶이 자신이 그려냈던 동화 속 삶과 다르다는 걸 알아버렸음에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 병적인 사랑은 어떤 감정으로 변모했을까.
안타깝게도 마녀는 이미 뒤틀리고 뒤틀린 사람이라.
그건 새로운 이야기를 향한 발판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의 공주의 삶이 가련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개입으로 그의 삶이 안타까워진 거라면.
등장해야 할 것은 새로운 등장인물이리라.
가엾은 공주를 사랑했지만, 실은 그 삶이 그다지 눈물겹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련을 얹어줌으로써 그 처연함이 완성되는 법.
자아, 노래하자. 새롭게 이어질 이야기가 너무도 만족스러워 절로 춤사위가 나올 것만 같은 이 마음을 눌러 담아 선율을 만들어내자.
*
딱하고 가련하여 가장 아름다운 나의 공주여
안쓰럽고 측은하여 가장 아름다운 나의 공주여
그 애처로운 낯을 어째서 내게 보이는가
그 처연한 낯을 어째서 내게 보이는가
내게 향해야 할 것은 그대의 감사 담긴 미소
무언가 잘못되었어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렇다면 다시 써 내려가자
그대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를
이야기의 변경을 위하여
그대 잠시 눈 감아 주오
눈 떴을 때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되리라
─
이는 왕자의 이야기이다. 여왕이 내걸었던 공주의 초상화에 사랑에 빠져 용감히 마녀와 맞서겠다 나선 왕자의 이야기. 왕자에게 공주는 지켜야 할 대상이며, 자신은 마녀와 맞서 이길 기사님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상대지만, 예로부터 공주를 지켜내고 서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사랑’의 정수가 아니던가. 눈이 마주치면 사랑에 빠지고,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끝내는 결혼하여 영원토록 행복할 수 있는 동화 속 사랑은 과연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말 그대로 ‘동화 같은 사랑’은 진정 사랑인가?
꿈결 같은 사랑도 어쨌든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 일종의 환상, 일종의 소설, 일종의 꿈. 하나 왕자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이 역시 사랑이다. 사랑, 사랑, 사랑. 느끼는 자가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겠다면, 그것을 대체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그렇다면. 결국 마녀를 무찌르고 공주의 손을 붙잡은 왕자는 진정한 사랑을 느꼈을까. 공주는 마녀에게 붙잡혀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마주한 왕자에게 사랑을 느꼈을까. 자신을 구해주기 위해 나타난 기사님을 보고 느낀 감정은 사랑일까. 긴장이 풀려 문득 들고야 만 안심이나 만족 따위를 사랑과 혼동한 것은 아닐까. 그 꿈결 같은 사랑은 결국 피어났을까.
하지만, 만약 왕자 역시 뒤틀린 사람이었다면.
왕자가 사실은 왕자의 탈을 썼을 뿐인 마녀였다면.
속이 변해도 껍데기가 왕자의 것이라면 동화는 동화처럼 흘러가는가.
……정말 그럴까?
자아, 공주. 가련한 그대를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해 왔소.
‘동화’와 ‘사랑’ 이야기라면 누구든 좋아하고 마는 게 이 세상의 진리, 이 땅 위의 섭리.
진정 생겨나 버린 시련 속에서 비추는 한 줄기 빛이 상대의 마음에 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 마음을 담아 선율을 만들어내자.
*
내가 누구인지가 그다지도 중요하겠소
나는 그저 나일 뿐이며
그대는 그저 그대일 뿐
사랑하오
그대만을 간절히 사랑하오
사랑하오
그대도 나를 사랑해 주오
그대에게 향하는 수많은 마음이
이 모든 감정이 사랑이라 대답해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