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돌아가기
38화: 「요정그물」
 정말이지, 가벼운 마음으로 플로레 지방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런 일을 겪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는데. 아마, 이런 일을 겪으리란 걸 알았다면 가라르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터다.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온통 스트레스뿐인 상황이어도. 이미 닥친 이상은 해결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이라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습관처럼 하는 말, ‘가라르로 돌아가고 싶다.’ 그 말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러니 꾹 참는다. 이 모든 사건과 사고의 원흉에게 스트레스를 몽땅 풀어줄 마음가짐으로…….  초승달포켓몬을 깨우기 위한 의식은 이제 서서히 진행되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도 다, 잘 해내고 있겠지. 제대로 살필 여유가 없었다만, 믿고 있는 사람들이니 분명 잘못될 일은 없으리라. 그러니 제가 할 일은 단순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이미 정해둔 것만 따르면, 자신의 몫만 해내면 잘못될 일은 없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잔뜩 긴장한 모습은 숨겨두고서 손에 쥐고 있던 몬스터볼을 던진다.  볼에서 플라비가 튀어나오는, 그 잠깐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저 수많은 크리스탈 성배 중, 자신이 노려야 할 것만을 고요히 응시한다. 그다음으로는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지시를 내린다. 자신의 순서가 언제인지 기억하면서, 그에 맞추어 자신의 믿음직한 동료에게 외치면─!  “플라비, 꽃잎댄스야! 화려하게, 누구보다도 강인하게…… 춤춰 보자고!”  기다렸다는 듯, 플라비는 빙글빙글 춤을 춘다. 꽃잎이 내려앉은 와중에도, 춤을 추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번의 파트너는 비록 무기물이지만, 그렇기에 더 힘내서 에너지를 쏟아 넣을 수 있을 터. 요정이 내려주는 풀의 에너지. 꽃도 풀의 일종이잖아? 절대 부족할 일은 없겠지!  꽃잎이 크리스탈 잔을 서서히 채워간다. 제발, 익숙지 않은 이역의 포켓몬이여. 우리의 소망이 닿아 잠에서 깨어나기를. 그리고, 우리의 편이 되어……. 끔찍한 악몽이 반복되는 것만은 막아주기를.  ─  자, 냐오삐. 네가 가장 잘하는 걸 보여줄 때야……! 탑의 꼭대기에 올랐던 이후로는, 하루 종일 품에 안고 다녔던 냐오삐를 땅에 내려놓는다. 알고 있지?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그렇게 말하며 파트너의 눈높이에 맞추어 몸을 숙인다. 다들 빈카의 품에서 하나둘 벗어난 지 오래지만, 아직도 파트너의 품을 가장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요정. 냐오삐는 평소처럼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빈카를 휙 바라본 후에, 한 번만 더 안아달라며 응석을 부리는 대신 몸을 숙여 손이 잘 닿는 빈카의 무릎에 손을 턱, 올려두었다. 마치 믿어도 좋다는 듯한 그 제스처가 얼마나 안심되는지. 괜찮아, 나도 널 믿고 있어. 떨림은 최대한 숨겨보려 했는데, 긴장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속여도 파트너는 속일 수 없다는 걸까…….  “자, 냐오삐! 미리 말해준 것, 기억하고 있지? 저 인간의 길은 모조리 틀려먹었다고, 점수를 매긴다면 완벽하게 0점이라고 선언해 준 다음에……. 요정의 찬란함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자. 자, 해 주고 싶은 요정 펀치는 잔뜩이지만! 우선은 의식이 우선이야!”  마저 의식을 진행하는 사람들을 보조하기 위해, 냐오삐는 빛의 장막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브리무음, 그리고 오롱털을 미묘한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에브이와 칼라마네로를 바라보면서. 메타그로스에게 잠시 닿았던 시선은, 오래 지나지 않아 그 너머의 스카비오사에게 향한다.  절대, 저런 망집 따위에 깨지지 않을 단단한 빛무리를, 모두를 지킬 수 있는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