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 파티가 한창인 프리즘 호. 그 크루즈 배의 갑판 위에서 빈카는 위스키를 마시며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리온 빌딩이랬던가, 아무튼 그 이상한 악당 녀석들의 건물에서 도망쳐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덕분에 기분 전환 삼아 즐기기엔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지금까지의 순례 여행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일주일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크루즈에 올랐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만족스러운 첫 춤도 마쳤고, 가족들과 오랜만에 얼굴도 마주하니 기분도 좋았다. 며칠 내내 달고 다니는 술은, 솔직히 취하기 위해 마신다기보다는 파티에 걸맞게 뭐라도 손에 들고 있으려 구색을 갖춘 쪽에 가깝긴 했으나……. 여하튼 술은 술이라고, 적당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쌉싸래한 알코올은 기분 좋은 취기를 선물해 주었으니. 더 심하게 취하기 전에 바람이나 맞으며 생각을 정리할 셈이었다.
벨라트릭스, 그 아이와의 마무리 이후의 생각 같은 것 말이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던 아이, 그저 한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던 아이. 무지도 죄가 될 수 있음을, 맹목 역시 죄가 될 수 있음을 그려내 인간으로 빚으면 저런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싶던 아이. ……사랑을 바라는 건 죄가 되는가? 죄가 죄임을 모르고 저지른 일은 죄가 되는가?
솔직히, 냉정히 말하자면. 피해자인 이쪽에서 저 아이를 동정하거나 이해해 줄 필요는 없었다. 저 아이에게 어떤 비밀이 있었고, 어떤 사정이 있었든지 다친 포켓몬들이, 다친 우리가, 고생한 내 시간이, 날 괴롭혔던 며칠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하지만 그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지도 않다. 안다. 아직 모르고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등에 업기엔 어린아이다. 그래서 벨라트릭스, 그 애가 감옥에 들어가 하나하나 배워나가길 바랐다. 제 죄를 이해하고, 잘못을 알게 되고, 진심으로 죄를 뉘우칠 때. 그때 용서하고 싶었다.
잔을 한 번 더 입가로 가져간다.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넘어가는 술 때문에 목이 텁텁하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고 했다. 빈카는, 사실 그 말만큼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으나……. 어쩐지 알 것도 같아졌다. 죄를 만드는 건 어떤 한 사람의 천성이나 본래 그 사람에게 내재하 있던 악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 죄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그런 환경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려줄 수 있는 공간, 아이가 홀로 세상을 전전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시스템, 눈앞에 도움이 필요한 자가 있다면 언제든 손 뻗을 수 있는 어른.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 아이도 이런 결말을 마주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더 쓰린 기분이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꼭 생긴다고들 하던가. 그렇다면, 그림자가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출 수는 없을까.
그게 아니면, 수많은 작은 빛을 세상에 퍼트리면 그림자 생길 공간조차 없지 않을까.
치기 어린 이상이라고, 말도 안 되는 허상 같은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꿈을 꾸는 건, 빈카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허락된 일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