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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세레니티 홀에서 달의 왈츠를
 프리즘 호, 선상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호화로운 상류층의 파티! 그중에서도 세레니티 홀은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선율과 백금과 은의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둔 완벽한 공간이었다. 아무리 인플루언서니 SNS의 셀러브리티니 해도 그는 평범한 살롱의 직원이었으므로 이런 파티를 즐기는 건 처음이었고, 그에 따라 당연히 가슴이 두근두근 설렐 수밖에 없었다. 그야, 말 그대로 셀럽의 파티인걸! 인기를 원한다고 해서, 이런 부차적인 걸 바란 것까지는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그 목표에 다가간 것만 같은 이 상황이 어째 싫지 않았던 탓이다.  다만, 한 가지 큰 문제 상황에 직면하고야 말았는데.  ─파트너를 구해야 해!  라는 것.  가라르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을 두 사람, 타지티 언니와 힐리안 오빠가 온다고 했으니 힐리안 오빠에게 부탁해도 된다는 건 안다. 알고는 있지만! 이런 곳까지 와서 가족에게 의지하는 어른이라니, 멋없어……! 결국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늘 말하지만, 빈카 페리는 포기가 빠른 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배에 오르기 전에 안전한 파트너를 구해야만 한다는 특명이 생기고야 만 것이다.  머릿속으로 후보를 몇 추려보았다. 조건은 단순. 웬만하면 자신보다 키가 클 것─여기서부터 일단 크게 고민했다─, 춤을 자신보다 잘 출 것, 멀끔하게 꾸미고 올 수 있을 법한 사람일 것. 아니, 이 정도 조건이라면 파트너를 구할 때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지 않은가? 속물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원래 유명인의 삶이란 그런 법이다. 혼자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그러던 와중 어느 아침이 되었을 때. 어느 정도 조건을 충족하지 않나, 싶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  그렇게 하여 지금이다.  일전에 했던 약속을 조금 틀어서, 절대 차이지 않을 법한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상대를 꾀고, 결국 성공했다! 비록 전통 춤을 구경하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기회는 분명 또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여자, 그것이 페어리 윙크인 빈카 페리이므로─ 평소 하고 다니는 모양새가 있으니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상식과 예의범절을 따를 것 같은 사람이라 막연하게 괜찮겠거니 생각하는 바도 있었다. ……비록, 크루즈에 승선한 첫날 선글라스를 거의 반강제로 압수해야만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 화려한 스카프 정도야, 뭐.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참견하는 건 조금 과한가, 싶은 생각도 분명히 있었고…….  아무튼 파트너와 의상, 세팅까지 모두 완벽하게 준비를 마치고서야 생각해 보니, 지금 상황에서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춤 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래 빈카 페리는 그다지 몸을 잘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몸을 써서 하는 일은 대체로 꽝이었다. 민첩, 근력, 유연성, 체력, 코어 힘. 운동이나 춤을 위해 필요하다는 몇 가지 조건을 따져보자면 그 무엇도 멀쩡한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콘테스트를 준비하며 며칠간의 연습을 통해 ‘춤’이란 것을 어떻게 추는 것인지 정도를 겨우 몸에 익혀두었으니 괜찮을까, 싶다가도. 자신이 고르긴 했어도 드레스의 형태가 꽤 난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드레스의 기본 골자 자체도 지금의 파트너가 골라준 것이다만.  잘못했다가는 자신이 밟든, 상대가 밟든. 드레스 끝자락을 밟기에 이보다 더 쉬운 형태가 없을 것만 같은 이 머메이드 라인이란! 그나마 다행이랄까, 상대는 춤 깨나 추는 모양이었으니 그다지 걱정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렇기 때문에 당당하게 파트너를 신청한 것도 있었다. 상대는 자신만만하게 밟아도 된다, 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역시 자존심의 문제였다. 상대를 배려하자면 굽이 없는 플랫 슈즈를 신을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약의 굽이라도 챙긴 점이라거나. 자신의 파트너는 꽤 지기 싫은 상대였으니까.  첫 춤을 추기 전까지는 마땅히 춤을 연습할 공간도 없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신의 페어보다 빠르게 춤을 추는 사람들의 스텝을 유심히 확인하고─ 어떻게든 머릿속에 완벽하게 입력하는 것. 화려한 조명 아래, 시시덕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선은 언제나 남의 발만을 쫓아다녔다. 하이라이트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 정도 벽의 꽃이 되는 건 참아낼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  세레니티 홀에서 몇 시간을 그러고 있었을까, 슬슬 눈이 뻐근함을 느껴서 눈을 감고 있자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거 설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뜨고, 다가오는 상대를 확인한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와는 사뭇 다른 걸음걸이로,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은 자세로. 자신을 보며 다가오는 상대를 보며 조금 어색하여 소름이 돋기도 한 것 같지만……. 그걸 여기서 티 내는 건 프로답지 못한 모습. 그러니까, 여기서는 완벽하게.  “물론이죠, 목서 씨.”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세팅을 끝내고서, 그에 걸맞은 화려한 미소를 더한다. 장갑 하나 없는 맨손을 상대에게 내밀었다. 홀의 중앙까지 에스코트를 해달라는 듯이, 잡아달라는 듯이. 그렇게 댄스 신청을 승낙하고 나면, 때마침 변한 음악에 맞추어 스텝을 옮긴다. 왈츠, 그러니까 페어 댄스를 추고 있기 때문에 속닥이며 나눌 수 있는 대화. 이것만큼은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솔직한 모습이므로, 그린 듯한 미소 아래로 뚱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원래 왈츠도 출 줄 알았어요? 전통 춤만 잘 추는 줄 알았더니.”  “아이참, 발 밟아도 괜찮다고 분명 말하지 않았던가?”  “진짜 밟으면 또 장난이나 칠 거면서.”  그런 실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내추럴 턴, 내추럴 스핀 턴, 이어지는 리버스 턴. 휘스크와 샤세 프롬 피피까지. 발과 발이 엇갈리고, 드레스 자락과 발끝이 겨우 스치는 아슬아슬한 스텝이 이어진다. 곡이 흐를수록 서로의 박자에 익숙해지면……. 이 정도면 합격점을 받을 댄스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