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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VS 붉은 흉성 [벨라트릭스]
 그깟 포켓몬 몇 마리, 라고 했는가? 우리는 상관이 없지 않으냐고 했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깟 포켓몬 몇 마리, 그래, 상대가 포켓몬을 겨우 그딴 식으로 대우한대도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인 게 맞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랑 관계가 없다고 해서 끼어들면 안 되나? 저쪽에서 먼저 제멋대로 구는데, 나라고 제멋대로 굴어서는 안 될 이유가 뭐가 있지?  상대의 말은 틀렸다. 포켓몬은, 겨우 그깟…… 것일 수 없다. 트레이너라면, 포켓몬과 함께 나아가는 인간이라면 그런 마인드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있을쏘냐. 하지만, 안다. 이쪽에서 붙잡고 설교를 해 줄 필요는 없다. 나는 저 애의 선생도, 보호자도, 뭣도 아니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상대에게 구태여 설득이니 대화니, 지금 당장은 시도해 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안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다. 힘으로 상대를 꺾으려 드는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힘을 먼저 보이는 게 우선이다. 칼을 들고 덤벼드는 아이가 있다면, 진정하라고 대화를 시도해도 통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우선은 그 칼을 뺏는 게 먼저니까.  “그쪽이 바라는 게 뭔지 알아요, 벨라트릭스. 아니…… 어쩐지 이 이름으로도 부르고 싶지 않네. 어쩌면 이것도 네 보스가 준 이름일지도 모르잖니?”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했을 텐데!”  “나는 네 삶을 몰라. 너와 네 보스의 관계를 몰라. 하지만, 네가 포켓몬을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만큼은 알지. 그러니까… 보여줄게. 그 방식은 틀렸으며, 네가 지는 이유는 네가 ‘그깟’ 방법을 몰라서 그렇다는 사실을.”  손에 들고 있던 볼을 던진다.  “에틸, 부탁해. 우리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힘으로 모든 걸 제어할 수 없음을, 때로는 뚫을 수 없는 강함 역시 존재함을.  에틸이 볼에서 튀어나옴과 동시에, 눈이 내린다. 냉랭히 얼어붙은 어둠길에 어울리 풍경이 되었을까. 눈 아래에서 두 번째 볼을 허공에 던져올린다.  “에틸, 오로라베일! 그리고 플라비, 어디 한 번 보여주자고. 그래스필드!”  이건, 이기기 위한 싸움임과 동시에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적으로부터 우리를, 캠프 멤버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 겨우 저런 애한테 한 대라도 맞아 아파하는 포켓몬을 봐주고 싶지 않다. 가만히 있고 싶지 않다며 볼에서부터 존재감을 과시하는 포닛치를 겨우 달래두고서, 삣삐와 냐오삐, 그리고 브릴리를 모두 불러낸다. 포닛치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의 자리에는 더 어울리는 배우가 있는 법.  “차밍보이스, 그리고 매지컬샤인이야. 알고 있지? 에틸, 너도 마찬가지고! 플라비에게는…… 자, 우리가 함께 연습했던 그 춤을 보여주자, 꽃잎댄스!”  설경 아래 흩날리는 꽃잎, 저 아이에게도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되었으면 한다. 함께 나아가는 인간과 포켓몬의 조화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우리가 저 아이로 하여금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듯, 저 아이도 나름의 악몽이 있겠지.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동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악몽으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는 거라면, 그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저 아이를 위한 일이지만, 동시에 저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니다. 악몽에 갇힌 인간이, 죄를 뉘우칠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에. 그저 저 아이가 악몽에 갇혀 살기를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러니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요정의 마법 같은 풍경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