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돌아가기
31화: 시리우스 빌딩 배틀 및 탈출
 이…… 사회의 악 같으니라고…! 신나게 쇼핑을 마치고 스테이지가 끝난 뒤의 여유를 즐기려고 했건만, 왜 늘 사건과 사고가 우리를 따라다니는가. 가는 길마다 마주치던 그 헌터 자식들에게 기어코 납치를 당했다. 마음이 어찌 편할 수 있겠는가? 억울함과, 암울함, 거기에 분노까지 섞인 마음으로 탈출만을 기다리며 이를 갈았다. 포켓몬을, 사람을. 이렇게…… 저들 좋을 대로 써먹고 말겠다고? 두고 볼 수 있을 리가. 우리의 앞을 막아서는 게 저들이라면, 이쪽 역시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빈카는 신고 있던 워커 부츠를 벗고 탈출을 감행했다. 양말이 더러워지든, 발바닥이 까지든, 심지어 그러다가 다치든. 그게 대수랴? 싸움에는 약하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거기, 더러운 복장의 아저씨! 이거 맞고 잠시 기절이나 해 달라고……!”  빈카는 냅다, 들고 있던 부츠 둘 중 하나를 조무래기의 얼굴로 던졌다. 제발, 제발, 기절해라. 그대로…!  ─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금방 도울게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시간도 아깝다. 18번 에리어를 지나치면서 조무래기를 기절시키느라 신발 굽 하나가 날아갔지만, 용맹하게도 다른 쪽 굽도 부러뜨리고 걸어온 빈카는…… 이제야 저 빌어먹을 조무래기에게 제대로 된 일격을 먹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묘한 즐거움마저 피어나는 착각이 들었다. 여기 있었구나……. 선반에서 자신의 몬스터볼을 주워든다. 몰려 있는 몬스터 볼 사이 제 아이들이 든 것을 찾아내는 건 눈을 깜빡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많이 기다렸지, 미안. 작게 중얼이고는 플라비의 볼을 던진다. 특별한 지시가 없어도 플라비는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플라비,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네 반짝임을 보여줄 때야! 꽃잎댄스!”  플라비는 빙글, 빙글, 빙글……. 무대 위에서는 무대장치를 꺾어버릴까 염려되어 포기했던 춤을 춘다. 꽉 막힌 창고에, 꽃잎이 흩날린다. 자아, 저 웬수같은 이들에게도 요정의 춤을 보여주자!  ─  저 녀석들이, 이 플로레 여행 내내 우리를 괴롭히던 요인. 저 자식들 때문에 도토링이, 다리가, 그 지진으로 산사태가……. 우리는 포켓몬이 되고, 납치까지 당하고, 그 때문에 어젯밤에는 분노에 잠도 못 이뤘다는 뜻이지. 저들 때문에 내가, 모든 걸 두고 가라르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잠깐이나마 했다는 사실에 열이 뻗친다. 자아, 자아. 요정의 분노가 이렇게 쉽게 꺼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동안의 우울, 염려, 분노, 후회, 그 모든 걸 담아 일격을 날린다. 제대로 날뛸 시간이다!  “포닛치, 너처럼 뛰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하루종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 이제 참을 필요가 없지! 신나게 날뛰자고. 너를 건들면 어떤 일을 당하는지 보여주자. 자, 사이코커터!”  빈카는 쉬지 않고, 다음 볼을 손에 쥔다. 브릴리, 전투는 처음이던가……. 언더그라운드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다 보여주자고!  “너희를 다 씹어먹고, 유진 씨한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러 가야 한다고!” ─  이런 난전을 언제 겪어 본 적이나 있었던가. 처음 순례여행을 떠났을 때에는 기껏해야 야생 포켓몬들과 만나 배틀을 하는 게 겨우 몇 번, 조금 포켓몬과 친해진 후에는 챌린저가 되어 스타디움에 섰을 때가 몇 번. 그 후로는 가라르의 다양한 트레이너와 친선 배틀을 주말마다 하는 게 몇 번이었다. 배틀에 아주 익숙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배틀에 무지하지도 않았다. 비록 이번 플로레 캠프에는 콘테스트에 챌린지 하기 위해 참여했으나, 본래 가라르엔 콘테스트 같은 고상한 무대는 없다!  거대 괴수 대전, 다이맥스를 활용한 배틀을 플로레의 한 짐리더가 그렇게 말했던가. 그래, 그게 거대 괴수 대전을 겪었던 트레이너의 기상을 보여주겠다. 해적이니, 헌터니……. 그딴 자식들이 영영 겪지 못했을 기합을. 흥, 앞으로도 두 번은 겪지 못할 기합을.  “브릴리, 환상빔! 쉬지 말고 그 다음은 사이코키네시스를 준비하도록!”  그리고, 자신의 포켓몬을 전투에 보내두고 마냥 쉬고 있을 빈카도 아니었다. 망가져버린 신발, 신고 다녀봤자 뭐에 쓸 건데? 굽을 괜히 정리했나 하는 마음으로 배후로 다가오는 조무래기 하나의 얼굴을 신발로 그냥 갈긴다. 미안…… 하다고 하겠냐?  ─  하아, 정말이지……. 진작 운동을 해뒀어야 했는데. 조금씩 숨이 차오르는 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무너질 수 있을 리가. 바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 버틴다. 지친 기색을 눈치챈 포닛치가 전투를 중단하고 트레이너에게 돌아오려 한다. 빈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지금은 안 돼. 우선인 건 모두의 안전이며, 탈출이다. 겨우…… 피곤함이니 체력 부족이니 하는 이유로 자신만 편히 쉴 수 있을 쏘냐.  “포닛치, 다음은 짓밟기야. 이제 고지가 눈앞이니까. 우리, 다음 무대는……. 함께 무대에 올라야지. 아직 난 네 반짝임을 찾아주지 못했어.”  포닛치를 보조하기 위해 에틸을 부른다. 그뿐이랴, 삣삐 역시 한 번에 불러내서 포닛치의 방어를 돕는다. 삣삐의 기술로 중력이 발동하면……. 눈앞의 조무래기들을 재우는 삣삐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그리고. 가장 어린 요정의 흉포한 발길질이……!  ─  신발은 자의로 다 내버렸고, 그나마 발을 보호하던 양말은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고 조무래기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닳아 구멍이 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신발 하나는 이미 조무래기를 해치울 때 날려버렸고, 그걸 주우러 갈 시간은 없었다. 차라리…… 남은 하나도 버리고 두 발의 높이라도 맞추는 게 나아. 그러고는 팔에 있던 팔토시를 양말의 대용품 정도로 사용한다. 머리는 다 풀어버렸다. 지금 예쁘고 말고가 중요해? 이미 하루 내내 화장을 지우지도 못해서 거지꼴일 얼굴에, 머리는 감지도 못했고, 옷은 지저분할 터다. 팔토시를 발에 끼우고 머리끈으로 발목을 고정한다. 이 정도면, 잠시간은 보호할 수 있겠지…….  “다…… 꺼지지 못해?!”  조무래기를 따돌려 탈출구로 달려간 후에는, 급한 대로 포닛치를 불러 그 몸에 오른다. 달려, 포닛치. 네가 낼 수 있는 전속력으로! 몸을 밀착시킨다. 잘 들어, 포닛치. 저 앞에서 ‘짓밟는’ 거야. 서로의 두근거리는 맥박이 한계에 달할 때쯤이 지나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칼라마네로를 앞굽으로 짓밟고 그대로 뛰쳐나간다. 자, 발레리 씨랑 한 약속을 지키러 가야지! ……비록 지금, 내가 미인이 아니라 좀 거지 같은 모습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