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돌아가기
20화: Report 5
 나는 여전히, 그 악몽 같았던 날을 기억한다. 폭발, 그리고 도토링. 그딴 작자들이 멀쩡히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분노하던 그 기억. 자신이 모르는 사이 얌전히 잡혀들어가길 바랐던 그 무리.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라 믿었으며,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그런 소망이 무색하게도 하늘이 무심한 탓에,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시 격돌하게 되었지만…….  벨라트릭스, 그 노을빛 머리카락을 아직도 기억한다. 정말 얼굴 보기 싫은데, 다시 만나기라도 하면 그 붉은 머리를 다 뜯어버리고 말겠다는 작은 분노를 속에 품고만 있었다. 정작 만나서 할 수 있었던 거라고는 그의 계획─엄밀히 말해서,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건만─을 막아서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는지 눈앞으로 흙이 무너져 내릴 땐 정말 ‘아, 여기서 끝인 걸까’ 하고 생각했는데……. 천운이 따라 주었는지 기어코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으면 일단 그걸로 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기에도 애매한 처지가 되어 있긴 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을까.  ─  첫 스테이지, 데뷔 무대는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다. 딩동의 도움을 받아 짧게 하이라이트만을 편집해 업로드했던 영상은 나름 나쁘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2만에서 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숫자가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월말인지라 본래는 SNS는 쉬어가고, 몸도 마음도 휴식을 취해야 할 시기였음에도 나름 의욕을 갖고 움직였다. 그게 어디가 의욕적이었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그래도 일어나서 얼굴을 비추고 SNS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맘때의 나에게는 아주 의욕적인 일이었다고 해두겠다. 그래도 3개월 동안은 힘내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하기 위해 심기일전해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휴가였다. 원치 않던 휴식은 되려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는 법이라. 오직 쳐다보는 것만이 가능한 제 SNS 계정을 노려보기도 하고, 예전의 사진이라도 올려볼까 싶어 냐오삐에게 부탁해 사진을 뒤적이기도 하고, 기라솔 씨에게 허락을 받아 잠시 샛길로 나갔다 올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무엇 하나 마음에 차지 않아 결국은 포기해 버렸지만……. 의욕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만 갈 때, 자신을 응원해 주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그대로 이 상황이 끝나는 순간 가라르로 돌아갈 계획이나 짜고 있지 않았을까.  그 목소리는 1개월 가량 함께한 친구의 것이기도 했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파트너의 것이기도 했다.  그래, 파트너의 목소리.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그 목소리 말이다. 울음소리로 미루어 보아 이 아이가 말하게 되면 이런 목소리겠지, 저 아이가 말하면 저런 목소리는 아닐까, 그런 상상은 어릴 때나 겨우 했던 일이다. 하물며 그들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받을 수 있다는 건, 서로 온전한 형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심지어는 내가 그들과 같은 시야를 공유하게 된다는 건. 정말이지 한참 전에 졸업한 가정인데.  헤어 디자이너는 본디 손이 생명인 직업이다. SNS 활동을 하기 위해서도 손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거기에 더해, 뭘 숨기랴. 솔직히 말해 나 스스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얼굴이었다. 타인의 호감을 가장 쉽게 얻을 방법의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포켓몬의 모습을 하게 되며 그 모든 걸 다 잃은 셈이다. 일시적인 일이라고는 해도, 평소와 다른 몸은 자잘하게도 불편함을 호소했다. 손이 없으니 ‘내’가 무언가 하기란 거의 하늘의 별을 따는 수준이었고─심지어는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 스테이지 준비에서도 삐걱거리는 부분이 분명 존재했다. 소중한 캠프 친구들을 안아주지도, 쓰다듬어주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그런데도. 그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단 하나, 가장 기꺼운 것이 있었다면…….  소중한 파트너이자 가족인…… 포켓몬,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