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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Report 4
 “……여보세요.”  “빈카니? 얘는, 또 이런 시간에 전화를 하고. 주말이라 망정이지 평일이었으면 받지도 못할 뻔했잖니.”  스마트로토무의 화면을 켜서 전화를 걸면, 아주 짧은 연결음이 이어지기도 전에 상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받으시네……. 어쩐지 매를 기다리는 아이가 된 기분이라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화면 속 상대를 마주한다. 엄마. 짧은 울림으로도 충분히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었다.  “그래, 소식은 들었단다. ……고생했어. 또 일 하나 끝났다고 침대에만 누워서 하루종일 빈둥빈둥, 그러고 있는 거 아니지?”  “……내가 그렇죠, 뭘.”  혼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었는데, 막상 마주하고 나니 당일에 ‘나, 다녀올게요.’ 같은 소리나 했던 불효녀를 향한 꾸중보다 막내딸의 성공을 축하하는 게 우선이신지라 코끝이 찡해졌다. 언제나 자신의 길을 응원해 주던 첫 번째 팔로워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제 가족이었으니까.  “엄마! 빈카랑 전화해요?”  “뭐? 걔 안 자고 있대요? 30일인데!”  “이제 자려는 거 아냐?”  눈앞에 보이는 건 엄마의 얼굴뿐인데, 로토무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로 거실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큰 언니, 오빠, 그리고 작은 언니. 어쩜 그리 성격들이 똑같은지. 네 사람이 모여 있으면 생긴 게 달라도 누구보다 가족이라는 게 티가 났는데……. 더 어렸을 땐 부모님의 부티크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명물이었지. 집에 있을 땐 그다지 느껴 본 적도 없는 향수에 작게 웃음이나 터트린다. 그 소리가 로토무 너머로도 들렸는지 시끌벅적하던 소리가 멈추고는,  “잘 지내는 모양이네, 그래도. 난 빈카가 남들이랑 같이 3개월이나 보내고 오겠다는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언니는 또 그런 이야기나 하고. 내가 아직도 애인 줄 알지?”  “너는 아직도 애처럼 굴잖아.”  “흥…….”  정말이지, 여기 캠프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었는지 알면 다들 웃음보가 터지리라. 게다가 팔자에도 없던 산책이니 체조니 하는 걸 시작했다는 걸 알면 ‘너 빈카가 아니구나’ 같은 소리나 돌아오리라.  “조금 더 자주 연락해. 네 소식이야 네 연락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들려오지만, 기왕이면 네게서 직접 전해 듣고 싶구나.”  아, 집에 가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던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아 근황과 쌓인 이야기를 전하고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알았다고 대답도 못하고 끊어버렸네. 다 큰 어른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치고는 꽤 애처럼 굴었나 싶다가도, 어차피 가족들에게는 영원히 막내로 남을 텐데 뭐 어때,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집이 그리웠으나, 그렇다고 앞으로의 목표나 도전을 제쳐두고 떠날 정도의 그리움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한테 날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냐오삐. 훨훨 날아서 가라르까지 오갈 수 있었으면 또 어떤 느낌이었을까. 난 아마 날개가 있었어도 운동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테니 거기까지 가는 건 무리였으려나…….”  얼마 전에 들었던 질문을 기억한다. 자신이 포켓몬이 된다면 어떤 모습이 될 것 같냐는 그 질문. 막연하게 페어리 타입이겠거니, 정도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바로 전에 날개니 뭐니 하는 가정을 한 것치고, 날개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달리는 걸 좋아하지도 않을 것 같긴 한데……. 단순히 귀여운 느낌이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닐 거고.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크게 떠오르는 게 없었을까.  “그냥, 잘 모르겠으니까……. 기왕이면 포닛치의 체력이나 속도를 받아줄 수 있는 쪽이면 좋겠네. 그렇지, 나는 포닛치의 언니니까 날쌩마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실은 그런 논리로 따지자면 다른 아이들도 모두 챙겨 줘야 하겠지만……. 포닛치는 막내니까. 페리 가족의 막내인 빈카보다도, 막내인 아이니까. 어쩐지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뒤늦은 향수에 빈카는 결국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